여행은 때로 삶의 이정표가 된다

2019년 상반기의 끝자락이었던 지난 5월. 

우리 가족은 겟어웨이(Getaway)라는 곳에서 1박을 하며 이민 5년차 생활에 새 챕터를 열었다.

겟어웨이에서 1박 한지 1주일 내 퇴사, 1달 내 이직, 그리고 2달 내 출산을 겪었기 때문이다.

뉴욕 – 뉴저지 – 코네티컷 근방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꼭 추천드리는 곳. 겟어웨이 뉴욕에서 맞이한 첫째 날.

Minimal Camping for Modern Urbanites

도시인들을 위한 미니멀한 캠핑 여행

겟어웨이가 특별한 이유는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에게 캠핑이라는 여행 상품을 참 적절하게 잘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 중 두 가지 특징이 도드라진다.

  1. 아무런 준비, 사전 지식, 그리고 시간적인 부담없이 캠핑을 즐길 수 있다
  2. 캠핑 공간, 트레킹 코스, 심지어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을지 조차도 철저하게 계산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위의 1번이 제일 와닿는다.

캠핑의 느낌은 나게 하되, 그렇다고 해서 캠핑 준비는 하지 않는 것. 이 독특한 니즈(Needs)를 파악해서 세련된 브랜딩과 디자인으로 풀어낸 곳이 겟어웨이다.

숲속 한 가운데에 있는 트레일러식 캐빈 - 겟어웨이 뉴욕

겟어웨이에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면 우선 내가 묵을 숙소를 내가 정하지 않는 다는 사실에 놀라고, 예약한 날이 되면 숙소에 대한 정보가 당일 아침 문자로 전달이 된다는 것에 또 놀란다.

마치 오늘 점심에는 뭘 먹을지, 이번 주말에는 어디를 가야할지 너무나 많은 선택지로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우리가 다 알아서 정해줄테니 그냥 예약만 하고 와’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겟어웨이 측의 배짱이라면 배짱이고, 차별화된 경험이라면 또 색다른 경험이다.

각 캐빈마다 이름이 있는데, 직원들의 가족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우리가 묵었던 곳의 이름은 '살바토르(Salvatore)'였다.

우리가 갔던 뉴욕 겟어웨이에는 약 10여개 정도의 캐빈이 있는데, 속으로 좋은 뷰가 있는 곳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10개 정도의 캐빈에 다 각자 최고의 뷰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또 든다.

각 캐빈은 서로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웬만해서 다른 투숙객과 마주칠 일은 없다. 들어가려면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각 방문객마다 비밀 번호도 당일 아침 문자로 전송이 된다. 

캐빈에 들어가면 간단하게 취사를 할 수 있는 조리 도구가 있고, 추억돋는 아날로그식 비상용 전화기도 있다. 간식 거리들도 꽤 있는데, 캠핑의 별미 ‘스모어(S’more)’는 공짜다.

우리나라 였다면 여기 분명히 컵라면과 햇반이 있었을 듯 하다.

사진에서도 보이지만 손글씨로 맞이하는 웰컴 레터가 정겹다. 그 아래 '겟어웨이' 100% 활용법 매뉴얼이 있는데 이를테면 '별 자리를 찾는 법' 등 추억이 될 만한 캠핑 가이드라인이 있다.

창문이 나 있는 방향과 크기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우리가 도착했던 날은 사실 비가 온 직후여서 칙칙한 날이었는데, 내부가 너무 밝고 또 예쁘게 빛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인공 조명은 최소화하고, 숲속의 자연 조명이 자연스레 들어오는 그런 디자인을 취했다.

사실 캐빈이나 트레일러하면 미국 영화에서 나올 듯한 컨츄리 풍의 공간이 나와야 할 듯 싶은데, 겟어웨이는 보기좋게 예상을 빗나간다. 

상당히 모던하다. 만약 내가 캠핑카 생활을 한다면, 이런 곳에서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에 인테리어도 최소화 했는데, 거의 ‘안티 디지털’의 느낌이다.

무엇보다 전기 콘센트가 있긴 한데 전력이 상당히 약해서 핸드폰 배터리 충전이 더디다. 와이파이 연결도 안되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브라우징 하기에도 상당히 느리다.

티볼리 오디오(Tivoli Audio)가 있어서 블루투스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지만, 여기서 굳이 뭔가 영상을 본다거나 하기는 좀 껄끄럽다.

결국 전자기기 다 끄고 아날로그 적인 삶을 한 번 경험해보라는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오자 마자 핸드폰을 방 안에 있는 락박스(Lock Box; 금고)안에 넣어두고 퇴실할 때 까지 안 꺼내보는 것도 추천한다고 쓰여있다. 

그나마 블루투스로 음악을 듣게 해준 티볼리 오디오.

그리고 여기 겟어웨이가 인스타그램에서 ‘히트’를 한 가장 큰 계기.

복층 구조중 가장 위에 있는 층에 나 있는 직사각형의 통 유리가 겟어웨이의 ‘와우 팩터(Wow Factor)’다. 이 통유리를 통해 보는 숲속 풍경은 정말 이루말할 수 없이 운치가 있다.

이 창문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들을 생각해 본 결과,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요약을 해봤다.

  1. 창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크다 (Floor to ceiling)
  2. 이 공간에서 만큼은 신발을 벗어야 한다
  3. 지면에서 꽤 떨어진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1번 – 생각해보면 캠핑에서 이렇게 큰 창문을 맞대고 숲을 마주하는 경험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텐트에서 바깥 풍경을 보거나, 아예 숲속에 나와서 있으면 있었지, ‘창문’을 마주할 일이 있을까?

이런 식의 통유리는 사실 미국에서도 최근 지어진 럭셔리 아파트에서 많이 보이는 트렌드다. 바로 바닥에서 천장까지 뻥 뚫린 창문. 개방감이 커진다.

2번 – 이 창문 공간이 신발을 벗는 공간이라는 점도 꽤 중요하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가 아닌데다가, 캐빈에서는 주로 신발을 신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이 침대가 있는 창가에서는 신발을 벗게 되어 있다. 신발을 벗고 긴장감이 풀어지는 공간.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인 침대에서 숲속을 마주한다.

3번 – 지면에서 꽤 떨어져 있는 공간이 가져다 주는 힘 또한 크다. 누워있는 공간이라서 뭔가 땅에 붙어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복층이라 성인 남성의 키 정도에 있다.

즉, 바깥을 바라봤을 때 땅 밑에서 하늘 위를 바라보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숲속을 바라보는 셈이 된다. 이 차이가 정말 어마 무지하다.

나무의 밑둥만 보거나 흙바닥만 보는게 아니라, 수풀이 우거진 숲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는 추억이 깃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상처도 깃든다는 말이 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짐.
정리하지 못한 서랍장.
언젠가 버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쌓아 둔 옷가지들.
밀린 설거지 등…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공간은 불완전하고 고된 우리 삶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집을 떠나서 다른 공간으로 간다는건, 우리 삶의 상처와 피로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갖는다. 

내게 겟어웨이도 그러했다.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느껴졌던 직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삭인 아내, 만 2살을 넘은 딸, 이민자 신분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시기.

올해 상반기가 딱 그러했다. 더 이상 앞으로도 뒤로도 갈 곳이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 바로 그런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잠시 숲으로 갔다.

보통 숙소에 오게 되면 부대시설(Amenity) 등을 통해 하루 종일 숙소에 있거나 아니면 짐만 맡겨두고 그 지역의 관광 거리를 찾아나서기 마련인데, 이런 펜션 류의 리조트는 공간 그 자체가 어메니티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겟어웨이의 창문은 정말 기가 막히다.

보통 창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되면 흔히 빛이 반사되서 얼굴이 완전히 까맣게 나오게 되는 역광 사진이 나오거나, 아니면 아예 초점을 잡을 수 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겟어웨이는 그 마저도 신경을 썼다. 직사광선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창문을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찍는데 뒤에 캣스킬(Catskills)의 우거진 숲이 그대로 사진에 담겨나온다.

삶은 지나봐야 그 의미가 더 확실해 진다 - 겟어웨이는 2019년 우리가 갈 수 있었던 유일한 여행이었는데, 이 여행 이후로 우리 삶은 180도 변했다

겟어웨이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 이 창문을 배경으로 투숙객들이 찍은 사진들이 무수히 많이 올라온다.

각양각색의 사진이 올라오는데, 비슷한 공간에 각기 다른 시간대, 계절,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 사진들 가운데 변하지 않는 요소는 창문 뒤로 보이는 캣스킬 숲의 모습이다.

단지 흘러가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때론 울창하기도 또 때로는 눈에 뒤덮인 모습으로 이 공간을 찾는 그 누구나 받아주는 캣스킬의 숲. 

겟어웨이의 진짜 주인공은 캐빈이 아니라 숲이다.

쉼은 자연에서 얻는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살다 보면 ‘숲’을 경험할 일이 없다.

서울만 하더라도 그 중심에 남산이 있고, 또 서울 주변으로 정말 많은 산들이 있지만, 뉴욕 인근에는 산이 없기 때문이다.

겟어웨이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내가 미국의 숲에 정말 문외한이었음을 깨달았다. 

특히 수아는 태어나서 숲을 처음 가본 셈이었는데, 비에 젖은 흙길도 그리고 높이를 알 수 없을만큼 큰 키의 나무들도 다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겟어웨이는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산 정상으로 갈 수도 있고 주변에 있는 폭포 등 트레킹 코스를 따라갈 수도 있다.

캐빈 앞에는 고기를 구울 수 있는 번개탄, 그리고 장작 더미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다. 장작 더미 세트를 쓸 때 마다 돈이 나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마구마구 썼다가 훗날 청구된 금액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캐반 바깥에서 기타를 친다거나 음악을 틀어놓는 행위는 금지다.

캐빈 안에 있는 전기불은 정말 약해서 무언가 그럴싸한 요리를 해먹기에 무리가 있고, 냄비 크기나 후라이팬의 크기도 상당히 작다. 

모든걸 미니멀하게 처리한 주방이 새삼 아쉬워지는데, 가스불이 아닌 장작불로 구워먹을 수 있는 요리를 준비해 오는 것도 겟어웨이를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밤이 되면 칠흙같은 어둠이 주위를 둘러 덮는다.

그리고 창문이 어둡게 되자 숲은 더 이상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었다.

특히 나는 캐빈 바깥에서 홀로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너무 어두운 곳에서 고기를 굽다 보니 ‘내 주변으로 산짐승이나 누군가가 와도 내가 전혀 모르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들 정도였다. 

저녁을 먹은 후에 특별히 겟어웨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대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같이 일어나 동이 트기 전 트레킹을 가거나, 아침의 고요한 숲속 길을 거니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가족도 첫째 날 밤에 저녁을 먹자 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햇살 가득한 캣스킬 숲을 만끽 할 수 있었다.